- 우리은행, 22일 이사회서 홍콩 ELS 자율배상 논의
- 금융권 관계자 “판매액 적어 선제적 대응 가능…언론플레이로 보여”
- 우리은행, 불판 피해자 배상요청 거절...피해자 A씨 “고객 말 전혀 안 믿어”
- 금융정의연대 김득의 대표 “우리은행, 낮은 자율배상은 분쟁조정 불가피”

[그래픽=김현지 기자]
[그래픽=김현지 기자]

우리은행이 상생금융지원 발표에 이어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에 대한 자율배상을 선제적으로 실시한다고 나서 또 ‘총대’를 메는 모양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율배상에 앞서 금융당국이 배상 기준이 되는 분쟁조정기준안을 내놓았지만 비판이 거센 상황이다. 은행권이 결정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이유다. 

조속한 배상을 권고한 당국의 의도에는 부합하는 행보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바라는 배상 수준에 못 미치는 상황인 만큼 문제만 되레 더 키울 우려가 없지 않다. 


금융당국 말이라면 ‘냉큼?’


우리은행. [그래픽=김현지 기자]
우리은행. [그래픽=김현지 기자]

우리은행이 홍콩H지수 자율배상에 나서는 첫 신호탄을 쏘아 올린 가운데 이를 향한 업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앞서 우리금융은 지난해 11월 금융지주 중 가장 먼저 상생금융 패키지를 발표해 문제 해결에 앞장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우리은행은 당시 우리상생금융 3·3 패키지를 통해 총 20조원 규모의 지원과 연간 2050억원의 고객 혜택을 내걸었다. 

하지만 우리은행의 상생금융은 '금융당국에 잘보이기 행보'라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공시에서 ‘우리상생금융 패키지로 상생금융 확대’라는 언급 외에 구체적인 수치가 제시되지 않아 실제로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는 확인이 안돼서다.

이런 와중에 우리은행이 홍콩H지수 자율배상에 대한 논의도 선제적으로 발표하자 업계에서는 긍정적인 시선보다는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22일 이사회에서 홍콩 ELS 자율배상을 안건으로 부친다.

배상비율은 평균 40% 수준으로 최대 배상액은 100억원 규모로 예상된다. 우리은행의 ELS 판매액은 413억원으로 은행권 중 가장 적다. 우리은행의 ELS 첫 만기일은 내달 12일로 43억원 규모의 피해 사례부터 개별적으로 배상비율을 결정하게 된다.

우리은행은 자율배상을 진행하더라도 배임 혐의를 받지 않는다는 법률적 검토 역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우리은행, 판매액 적어 가능…언론플레이 의심”


한마디로 업계가 우리은행의 결정을 반기는 상황은 아니다. 아직 ELS 분쟁조정기준에 대한 입장차가 있는데 우리은행이 선제적으로 발표하면서 다른 판매사들도 급히 뒤따를 수밖에 없는 모양새가 돼버려서다.

사실상 금융당국의 지시가 있어 모든 판매사가 자율배상을 시행할 예정인데 판매액이 가장 적어 배상 결정이 유리했던 우리은행의 움직임은 빨랐다. 이에 상생금융 발표 때처럼 나홀로 이미지 챙기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더리브스 질의에 “우리은행은 판매 금액이 적다 보니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데 다른 판매사들은 금액이 한두푼이 아니어서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주주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는 상황이니 이사회에서도 주주총회에서도 결정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ELS와) 관련된 피해자가 많다 보니 전수 조사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된다”며 “예를 들어 모든 판매사가 배상하겠다고 결정하더라도 우리은행과는 집행 속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집행하는 프로세스다 보니 최선을 다해 빠르게 하려고 해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 관계자는 “절대적인 (판매) 양의 차이가 있다 보니 판매사 입장에서는 이번 소식이 곤혹스러울 수 있어 보인다”면서 “사실상 당국과의 관계 개선과 언론플레이를 위한 행보로 보인다”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더리브스와 통화에서 “ELS 상품 판매사는 큰 흐름에서 금융당국의 발표 내용에 동참할 것이기 때문에 언제 논의할지가 문제지 우리은행의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피해자 “우리은행, 앞선 사모펀드에서 학습한 수습…이미지 챙기기로밖에 안 보여”


지난해 12월 15일 홍콩 ELS 피해자들이 집회에 참여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한지민 기자]
지난해 12월 15일 홍콩 ELS 피해자들이 집회에 참여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한지민 기자]

우리은행의 자율배상 소식에 피해자들도 긍정적으로 보지만은 않고 있다. 분쟁조정기준안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우리은행이 배상비율을 일방적으로 결정해 제안할 것으로 예상돼서다. 

피해자의 말에 따르면 최근 60대 피해자가 불완전판매 민원을 우리은행에 제기한 지 하루 만에 배상이 불가하다는 회신을 받았다. 심지어 판매직원의 주장만 신용하고 피해자의 배상요청은 거절돼 선제적 자율배상을 시행하겠다는 우리은행의 자세가 어떤를 엿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피해자 A씨는 더리브스 질의에 “오늘 60대 어떤 분이 부당권유 금지 민원을 우리은행에 넣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런데 우리은행의 대응은 ‘해당 직원은 그런 말 한 적 없다’며 배상해 주지 못한다고 회신이 왔다고 한다”며 “직원 말만 믿고 고객 말은 전혀 믿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분쟁조정기준안에 대해서도 A씨는 “은행에 편중된 기준으로 피해자에 대한 고려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ELS 가입 경험 기준만 봐도 그렇다. ELS 최초투자자는 (배상비율이) 5%p 가산이 되고 20회 이상은 최대 25%까지 감점하게 돼 있다. 이 말은 은행은 피해자에게 5%만 내주고 피해자들은 은행에 25%를 내줘야 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예를 들어 폭행 사건이 일어나면 경찰이 피해자와 가해자 양쪽의 진술을 듣고 종합해 검찰에 송치해야 하는데 이번 건은 피의자의 진술만 가지고 검찰에 송치한 꼴”이라며 “재가입자도 설명을 듣지 못한 채 수익이 나니 신뢰로 가입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피해자들도 자산규모가 다 다른데 어떤 근거를 기준으로 갈라치기, 기준금액 등을 나눴다고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라고도 말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정의연대 김득의 대표 역시 이번 배상기준안으로는 결국 분쟁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봤다. 이전 사태 때는 배상비율 70%까지는 합의가 됐던 점을 고려했을 때 이번에도 60% 미만의 분들은 분쟁조정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고 봐서다. 업계에서는 평균 배상비율을 20%~60%로 예측하고 있다.

김 대표는 더리브스와 통화에서 “우리은행은 금액도 적고 배상 조건이 경쟁 은행보다 더 낮을 것이기에 자율배상을 시행하는 것”이라며 “이번에 지급하는 비용이 긍정적 이미지의 광고비로 쓰일 수 있다는 경영적 판단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앞서 우리은행이 DLF, 라임, 사모펀드에 많이 연관됐었다 보니 어떻게 수습하는지에 대한 학습 경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전 DLF나 라임 때는 분쟁조정을 해서 대표 사례를 만들고 자율배상 기준을 발표했었다면 이번에는 거꾸로 자율배상 기준을 먼저 만들고 이후 분쟁조정위원회에서 회의를 개최하려는 모습이다”라며 “이 방법도 법원의 사적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업무상 배임 논란은 없을 것”이라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다만 우리은행의 배상안이 오히려 피해자들을 소송으로 내몰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는 분조위를 열어 양측 진술을 들어야 해서 시간이 걸렸는데 지금 금감원은 시간 단축을 위해 배상 기준안을 먼저 발표한 셈이다”라며 “이번 배상안이 이전보다 후퇴했다 보니까 오히려 피해자들을 반발과 소송으로 내몰고 있다고 본다. 만약 자율배상을 안 하고 다 분쟁조정을 신청한다면 업무적으로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모르겠다”라고 우려했다.

한편 하나은행도 오는 27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ELS 자율배상을 논의할 예정이며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도 논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지민 기자 hjm@tleav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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