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감독원, 지난 11일 홍콩H지수 ELS 배상기준 발표
- 금융권 관계자 “시간도 걸리고 힘든 과정일 것…가산 불분명해”
- 금융정의연대 김득의 대표 “세부 기준 알 수 없어…DLF 때보다 후퇴”

[그래픽=김현지 기자]
[그래픽=김현지 기자]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의 대규모 손실이 확정되면서 판매사와 피해자와의 갈등이 심화되자 금융당국이 배상 기준안을 내걸며 중재에 나선 모습이다.

금융당국이 발표한 배상비율조정안에 따르면 100%의 배상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그 가능성이 매우 희박할 것으로 보인다. 벌써 기준안을 두고 판매사와 피해자 간 입장차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금감원, ELS 분쟁조정기준안 발표


금융감독원. [그래픽=김현지 기자] 
금융감독원. [그래픽=김현지 기자]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홍콩H지수 기초 ELS 상품에 대한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했다. 이번 배상안은 판매사의 책임과 투자자별 특성을 고려한 투자자 책임이 종합적으로 반영되도록 세밀하게 설계됐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이복현 금감원장은 “ELS 상품 판매 및 투자행태의 특수성을 고려해 보다 정교하게 설계하려 노력했다”며 “판매사 측면에서는 판매원칙 위반 정도가 크거나 소비자보호체계가 미흡할수록 배상비율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어 “투자자 특성에 따라 고령자 등 금융취약계층, 예적금 가입 희망 고객 등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경우 배상비율이 가산되지만 ELS 투자 경험이 많거나 금융 지식수준이 높은 고객 등에 대한 판매는 배상비율이 차감되는 방식으로 설계했다”고도 덧붙였다.

배상비율은 판매사의 요인이 반영되는 기본 배상비율과 판매사 가중, 투자자 고려 요소가 반영되는 투자자별 가산 및 차감에 따라 계산된다. 이 기준에 따라 적게는 0%, 많게는 100%까지 배상이 가능해진다.

금감원은 배상비율에 대한 다양한 예시도 제시했다. 일례로 예적금 가입 목적으로 2021년 1월에 은행에 방문한 80대 초반 고객이 은행직원의 권유로 2500만원 규모의 ELS에 가입했는데 가입 과정에서 설명의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경우 배상안 기준에 따라 75% 내외 수준의 배상이 가능하다.


금융권 관계자 “가산 항목 불분명해…사적화해 진행될 것으로 봐”


배상비율조정. [사진=금융감독원] 
배상비율조정. [사진=금융감독원] 

하지만 이러한 기준에도 판매사와 가입자 간의 배상 줄다리기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금감원이 제시한 가산·차감 항목도 구체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권유부터 가입이 이뤄지기까지의 전 과정이 서면으로만 진행된 게 아니다 보니 각 항목의 비율을 고려하는 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해서다.

이와 관련 판매사 쪽에서는 가산 항목이 다소 불분명하다는 의견이다. 배상안 가산 항목은 예적금 가입목적 고객(10%p), 금융취약계층(5~15%p), 비영리공익법인(5%p) 등 최대 45%로 세분화돼 있지만 가입자의 주장에 따라 특정 항목에 대한 비중이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시각에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더리브스 질의에 “(금융당국이)이전의 사모펀드 때도 가이드는 줬지만 사적화해를 하는 등의 최종 판단은 은행이 했다”며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배상안 기준 중 가산 차감된 항목들의 기준이 조금은 불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가입자들의 주장에 따라 인정해야 될 것 같은 항목이 적지 않다”며 “예를 들어 비영리공익법인 중 ELS 상품을 충분히 다 이해한 뒤 법인 명의로 가입을 한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이를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다양한 측면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이번 배상은) 시간도 굉장히 걸리고 힘든 과정일 것”이라면서 “금융당국이 기준안을 내놓았다 보니 은행이든 증권사든 (사적화해를) 진행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피해자들, 은행의 판단 받아야 하는 상황…차감 요인도 확대돼”


지난해 12월 15일 홍콩 ELS 피해자들이 집회에 참여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한지민 기자]
지난해 12월 15일 홍콩 ELS 피해자들이 집회에 참여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한지민 기자]

피해자들은 이번 배상이 DLF 때보다도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금감원이 발표한 배상안만으로 피해자들은 자신의 배상액을 계산할 수 없는 상황이며 추측해 볼 수 있는 배상비율이 예상보다 크게 줄어서다.

금융정의연대 김득의 상임대표는 더리브스와 통화에서 “(이번 배상안은) DLF나 사모펀드 사태 때보다 굉장히 후퇴했다”며 “가산 항목으로 신설된 건 눈에 안 띄는데 차감 항목은 많이 확대됐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가입 규모가) 2억원을 초과해야 감점됐는데 이번에는 5000만원 이상으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배상 0%는 나와도 100%는 안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을 주장해 온 금감원의 논리라면 치매 환자라든지 서류를 위조했다든지 등 중대한 취소 사유에 대해서는 100% 배상을 해야 했다고 본다”면서 “가장 큰 문제는 금감원의 배상기준안으로는 피해자들이 계산이 안 된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아울러 김 대표는 “피해자들은 세부 기준을 모른 채 은행이 주는 판단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배상 판단을 은행이 하게 되면 본인에게 유리한 배상기준으로 사적화해를 할 것이라고 본다”며 우려를 표했다.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과 신세돈 명예교수는 배상비율이 은행 판단의 몫으로 돌아가면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신 교수는 더리브스 질의에 “배상비율이 구체적으로 나와야 하는데 지금 비율로는 분쟁의 여지가 남아있어 보인다”며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하지 않은 채 모든 판단이 은행의 몫이 되면 피해자와의 분쟁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내달부터 대표 사례에 대한 분쟁조정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분쟁조정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다만 각 판매사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같은 조정기준에 따라 자율적으로 배상(사적화해)을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한지민 기자 hjm@tleav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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