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DB손보, 최고경영자 자격요건 왜 개정했을까
- ‘이사회가 인정한 자’ 적극적 자격요건 신설 - 이사회 사내이사 4인 DB손보 오랜 기간 몸담아 - 사외이사 독립성 확보에도 오너 지배구조 견고
DB손해보험이 최근 지배구조내부규범을 개정해 공시한 가운데 최고경영자 자격요건에 관한 문구가 일부 추가됐다.
주된 개정 내용은 사외이사 독립성 확보가 목적이지만 이와 동시에 최고경영자 선임 요건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최고경영자 자격요건에 ‘이사회가 인정한 자’ 추가
DB손해보험은 지난달 28일 자사 홈페이지에 지배구조내부규범 개정을 공시했다. 공시 전 이미 같은달 19일부터 시행되기로 한 이 규범에는 최고경영자 승계요건에 이사회가 인정한 자이어야 한다는 내용이 새로 담겼다.
개정 전 제31조 최고경영자의 자격요건은 회사의 비전·경영이념에 대한 이해, 보험업에 대한 업무 전문성, 조직관리 역량, 도덕성, 공익성 및 회사 가치의 증대를 통한 이해관계자 이익 추구 등에 부합하는 자였다.
하지만 개정 후 규범에선 최고경영자 자격요건이 보험업법 등 관련 법령상 임원 요건에 부합해야 한다는 소극적 내용에 더해 적극적 자격요건이 설정됐다. 개정 전 내용과 사실상 동일하지만 여기에 ‘이사회가 인정한 자이어야 한다’는 내용이 더해진 것.
개정 내용 대부분 사외이사 관련…당국 조치 반영
최고경영자 요건을 제외하면 개정 내용은 모두 사외이사 관련이다. 이사의 권한과 책임에 관한 제10조에는 ‘사외이사는 회사에 대하여 그 직무를 수행할 때 필요한 자료나 정보의 제공 및 전문가의 자문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이 반영됐다. 효율적인 경영진 견제 기능 제고를 위해 업무수행을 지원한다는 취지에서다.
이사회의 소집에 관한 제11조의 경우 선임사외이사는 균형있는 이사회 운영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의장에게 사외이사로만 구성된 사외이사회 소집을 청구할 권한이 있으며 이때 회사는 이사회에 준해 이를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신설됐다. 사외이사회 소집 절차 마련으로 사외이사 책임 및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보수위원회 관련 제18조에는 사외이사 지원조직 업무총괄자 및 선임계리사에 대한 성과평가 참여 내용이 새로 담겼다. 사외이사 지원조직 및 선임계리사 독립성 확보 및 강화를 통한 경영진 견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는 모두 지난달 13일 금감원이 공개한 경영유의사항에 지적된 내용에 따른 조치로 볼 수 있다. 금감원은 종합적으로 볼 때 DB손보가 이사회 의장이 사내이사인 만큼 효율적인 경영진 견제 기능 제고를 위해 사외이사의 적극적 역할과 책임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오너 지배구조 아직까지 견고
DB손보는 규범 개정을 한 사유가 금융당국이 권고한 보험권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마련하고 지난해 정기종합검사 개선 권고 등에 따라 최고경영자 승계요건을 명확하게 하고자, 또 이사회 독립성과 내부통제 감시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다만 DB손보는 경영유의 항목에 포함된 사외이사 독립성 문제가 개선되도록 당국이 요구한 대안 마련에 부응하면서도 현 지배구조에 부담이 될 만한 측면도 고려한 듯 보인다. 최고경영자 자격요건에 ‘이사회가 인정한 자’는 오너 지배력이 반영될 여지를 두는 측면도 있어서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오너일가가 경영적으로 위협을 느낄만한 상황은 아니다. DB그룹에서 금융 지주사격인 DB손보 지분을 김준기 창업회장은 5.94%, 장녀 김주원 부회장은 5.94%, 장남이자 최대주주인 김남호 명예회장은 9.01%, DB김준기문화재단은 5%를 보유하고 있다.
오너 리더십이 강한 회사 특성상 규범을 개정했다고 해서 사외이사가 힘을 쓰기엔 어려울 거란 얘기다. 이사회는 사내이사 4인, 사외이사 5인으로 구성돼 후자가 1명 더 많은 구조이지만 전사 경영 자문으로 회사 내 잔뼈가 굵은 김정남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이다. 지난해 재선임된 정종표 대표와 남승형 부사장, 박기현 상무 모두 DB손보에서 오랜 기간 몸담아온 인물이다.
DB손보 관계자는 최고경영자 자격요건과 관련해 묻는 더리브스 질의에 “(경영유의) 권고 내용에 대한 사안에는 없었지만 구두로 했을 수도 있는 것”이라며 “권고 내용이 사이드로 있었을 수도 있고 복합적으로 있는 거라 세부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한편 부자관계인 김 창업회장과 김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을 빚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과거 승계 밑그림엔 장남이 있었던 듯 지분은 김 명예회장이 많지만 올해 DB아이앤씨가 DB손보 지분을 사들이면서 업계는 불확실성 속 승계 구도 향방에 주목한다.
김은지 기자 leaves@tleav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