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차입경영’ 헝다그룹 위기…전염 가능성 향방
대출 건전성 위험에 관련 은행주 약세…불안 심리에 타은행주 영향 채권 신용위험 확산 우려…우량 부동산도 유동성 점검 필요 금융시스템 위기 지표 살펴야…헝다 재무구조 지속불가능도 주목 만기 이자 미지급에 투자자 피해 우려…글로벌 증시 영향 장기화 예상
중국 헝다(恒大·Evergrande)그룹의 경영 위기가 시장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금리 인상과 대출억제, 미국 테이퍼링 이슈로 금융시장의 유동성이 줄어들 것이라는 시장의 위기감이 감도는 가운데, 이자를 내지 못해 파산 위기에 몰린 헝다그룹이 경각심을 더하는 상황이다.
국내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헝다그룹의 파산 선언 시 국제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장기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전염 가능성이 어느 경로로 확대될지 관심이 모아질 전망이다.
대출 건전성 위험에 관련 은행주 약세
KB증권 리서치센터 분석에 따르면, 주식 시장에는 부동산 대출과 관련한 은행주 약세가 두드러졌다.
올해 상반기 헝다그룹의 재무상태표에 따르면, 헝다그룹은 약 350조원이 넘는 부채를 안고 있다. 이러한 부채를 기업이 감당할 능력이 없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관련 은행에게로 넘어간다. 부동산 개발회사의 부채 문제는 은행에 잠재적인 손실과 건전성 이슈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헝다그룹으로 인해 대출 익스포져가 크다고 알려진 중국 본토 기반 민생은행은 직격탄을 맞았다. JP모건에 따르면 민생은행 총대출액 중 헝다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0.8%로 1%에 못 미치지만, 현금 규모로 보면 지난해 말 기준 민생은행의 총대출액(3조8500억 위안) 대비 최소 300억 위안(한화 5조4639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지난 17일 홍콩 증시에서 민생은행은 헝다에 대한 여신 규모가 크다는 이유 때문에 주가가 약 5% 급락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헝다그룹 파산 위기에 따른 불안 심리에 부동산 업계에 대한 대출 비중이 큰 은행주들이 무더기로 급락했다. 지난 20일 홍콩증시에서 초상은행은 9.38%, 우정저축은행은 4.71%, 농업은행 4.09%, 건설은행 4.07%, 교통은행 3.74%, 중국광대은행 3.60%, 공상은행 3.00%이 전 거래일 대비 하락세를 나타냈다.
은행주 뿐 아니라 중국 대형 보험사인 핑안보험 역시 타격이 불가피했다. 핑안보험은 지난 20일 전일 대비 5.78% 떨어진 51.35 홍콩달러로 거래를 마쳤는데, 이는 2017년 8월 이래 최저치 기록이다. 부동산 투자에 집중해온 핑안보험은 연초 ‘차이나 포츈(China Fortune)’ 채무불이행(디폴트)로 이미 타격을 입은 바 있다. 당시 익스포져 규모는 84억 달러였다.
여러 섹터 및 등급 채권 신용위험 확산 우려
헝다그룹 파산 위기는 중국 달러채 시장으로 번질 조짐이다. 현재 부동산 외에 투기등급 전반이나 우량 부동산 기업으로 신용위험이 확산된 상황은 아니지만, 중국 USD 크레딧 투기등급 지수는 급락한 반면 금리는 급등했다는 점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해당 지수에서 부동산 섹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2/3 수준인데, 부동산 기업이 붕괴하면 지수 전체가 급락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부동산 기업의 채권은 가격 급락으로 스프레드가 급등했지만, IT 및 가전 기업의 채권 스프레드는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KB증권 박준우 연구원은 “아직 투기등급 채권 시장 전반으로 위험이 전염된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라면서도 “크레딧 채권 시장의 경우 위기가 확산되기 시작하면 기존의 섹터간 상관관계가 모두 무시되고 시장 전반이 경색돼버리는 특성이 나타나기에 각별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량 부동산 기업의 경우에는 중국 투자등급 지수가 투기등급과 달리 견조한 모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 부동산 기업의 영향으로 하락하기도 했으나 이전까지 꾸준한 상승세가 이어져온데다 하락 폭이 적어서다.
다만 우량한 부동산 개발 회사들에 대해서도 유동성 위기를 점검할 필요성이 있다. 헝다 사태가 전염되기 시작한다면 다른 부동산 기업들의 연쇄 부도 위험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중요한 모니터링 지표로 주목된다.
박 연구원은 “투기등급 중 부동산 섹터의 약세가 두드러지지만 아직은 부동산 개발 기업이 전반적으로 유동성이나 부도 위험에 직면한 것은 아니다”라며 “헝다보다 신용등급이 높은 기업들의 회사채 스프레드는 20일 큰 폭으로 확대되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는 다소 안정된 모습”이라고 말했다.
금융 시스템 점검 필요…이자 미지급에 투자자 피해 현실화
어제(23일) 헝다그룹이 끝내 이자를 내지 못하면서 파산 위기는 2008년 리먼 사태와 비견되며 금융시장에 미칠 악영향이 우려되고 있지만, 실물 자산 보유와 정부 개입 가능성의 측면에서 볼 때는 금융 시스템 위기로까지는 번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만 시스템 위기가 확산될 가능성을 나타내는 지표들은 지속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먼저는 부동산 가격이다. 중국의 부동산 가격 상승세 둔화는 이미 올해 초부터 진행됐는데, 하락 속도가 가팔라지면 부동산 시장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 시 시스템의 위기에 대한 우려는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역내 회사채 스프레드도 주목할 부분이다. 앞서 지적했듯, 우량 회사채 시장으로 신용경색이 확산될 경우에도 시장의 우려는 확대될 수 있다. 다행히 최근 AA급 이상 회사채 스프레드는 소폭 상승했지만 연초보다 낮은 수준이다.
아울러 은행 간 금리 역시 점검이 필요하다. 금융 시스템의 위기는 은행 부실에서 주로 기인해온 만큼, 은행 간 단기자금 시장에서 금리 흐름을 확인할 필요성이 있다. 다만 당장은 인민은행도 2월 이후 최대 규모로 유동성을 순공급하는 등 은행 간 금리는 안정적인 상황이다.
이외에도 아직은 안정적이지만 위안화 환율과 최근 확대 조짐이 나타난 신용부도스와프(CDS) 동향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편 CNBC에 따르면, 헝다 측이 23일 자사가 발행한 달러 채권을 보유한 투자자들에게 이자를 지급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투자자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헝다는 23일(현지시간)까지 달러 표시 채권 이자 8350만 달러(약 982억원)와 위안화 채권 이자 2억3200만 위안(약 425억원)을 채권 보유자들에게 지급해야 했으나, 이자 지급 기일 다음날인 24일 오전까지 어떠한 발표도 하지 않으며 디폴트 사태 우려를 고조시키고 있다.
이에 홍콩 증시에서 헝다의 주가는 또 6% 급락으로 출발했으며,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채권금리(채권수익률)는 폭등하고 있다. 채권 전문업체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이날 기준 헝다의 5년물 채권금리는 560%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7월 16일(36%) 이후 2개월 만에 15배 폭등한 수치다.
이자 납입 기간은 30일 동안의 유예기간이 존재하는 만큼 당장 파산은 이뤄지지 않는다. 다만 채권 이자의 만기가 내주 수요일(29일)에 이어 매달 남아있는 만큼 파산은 ‘시간문제’로 비쳐지고 있다.
SK증권 신얼 연구원은 “헝다그룹의 총 부채(1.966조위안) 중 유동부채는 1.572조위안으로 총 부채 대비 약 79.9%를 차지하고 있고, 유동부채 중 매입채무는 1.116조위안으로 총 부채 대비 약 57%의 구성 비중인데 선분양금 등으로 알려져 있다”며 “부채의 질이 빠르게 악화됐고, 부채의 만기 구성 또한 단기화되는 동시에 추가적인 자금 조달이 불가해지는 상황 가운데 채권 이자 지급 불능 리스크가 부각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신 연구원은 “부동산 개발업체라는 특성상, 채무 불이행이 현실화될 경우, 중국 경제 및 금융 시스템 리스크의 현실화 가능성 등에 시장의 민감도가 매우 높아질 수밖에 없게 됐다”며 장기 이슈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내다봤다.
신 연구원은 “채무 불이행 이후 파산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한층 커진 가운데, 현재까지 중국 정부 당국의 입장을 볼 때, 적극적인 개입 의사는 크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물론 디폴트의 현실화가 야기할 후폭풍을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금융시장은 결국 헝다 그룹의 재무 구조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회사채 만기 도래 예정액은 2022년 73조8000억달러, 2023년 98조2000억달러, 2024년 34조2000억달러, 2025년 56조2000억달러 등으로 총 부채 대비 약 10%에 불과하지만, 원금이 아닌 이자 지급마저 어려운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헝다 그룹 문제는 향후 중국 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 및 금융시장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은지 기자 leaves@tleav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