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 계류’ 증권사 CEO보다 손태승 징계 빨랐다
- 금융당국 “손 회장에 대한 중징계, 자본시장법상 판단”
- 금융위, 법원 지배구조법 판단 기다려야 한다는 이유로 중징계 확정 지체

금융감독원. [사진=임서우 기자]
금융감독원. [사진=임서우 기자]

라임사태 관련 금융당국이 최근 우리금융지주 손태승 회장에게 중징계 결정을 내리면서 징계 대상 우선순위에 정치적인 의도가 개입돼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라임 펀드를 대거 판매한 일부 증권사 CEO들이 금감원으로부터 먼저 문책경고를 받았는데도 약 3년째 금융위원회의 최종 의결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은 논란을 야기한 주요 근거다.

이를 두고 CEO 연임 결정을 앞둔 증권사 및 모회사인 금융지주를 위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는데, 당국은 관련 소송 결과를 기다려야 해서 시간이 더 걸린다는 해명이다.


먼저 매 맞은 손 회장에 의혹 제기


우리금융지주 손태승 회장. [사진=우리금융지주 제공]
우리금융지주 손태승 회장. [사진=우리금융지주 제공]

금융위원회는 지난 9일 정례회의 의결을 통해 라임 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 우리은행의 불완전판매 등 위법을 인정했다. 이에 당시 우리은행장이었던 손 회장에게는 최종적으로 ‘문책경고’ 조치가 내려졌다.

5단계로 구분된 금융사 임원 제재 중 3번째로 높은 중징계인 문책경고는 금융사 취업이 3-5년간 제한되며 원칙상 연임이 불가능하다. 최근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DLF) 사태 관련 재판에서 1·2심 모두 승소하며 연임을 기대한 손 회장에게는 타격이 큰 셈이다.

우리은행은 2018-2019년 3577억원 규모로 라임펀드를 가장 많이 판매한 은행인 만큼 손 회장에 대해 먼저 내려진 징계는 상징적인 의미로도 비쳐진다. 다만 라임 관련 CEO 중징계가 이보다 앞서 확정됐던 증권사들에 대해서는 징계가 아직도 계류 중이라는 데서 의혹이 불거졌다.

라임 피해자 A씨는 더리브스와 통화에서 “전 신한투자증권 김형진 대표와 대신증권 양홍석 사장 등에 대해서는 CEO 제재가 3년째 계류 중인데 손 회장만 먼저 징계 처리됐다”며 “정치적으로 징계우선순위를 정한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CEO 대거 연임 앞둔 증권사


여의도 증권가. [사진=김은지 기자]
여의도 증권가. [사진=김은지 기자]

증권사들은 올해 말과 내년 초 대거 CEO 임기만료를 앞뒀다. 해당하는 증권사만 14곳이다.

세부적으로 ▲교보증권(이석기) ▲다올투자증권(이창근) ▲미래에셋증권(이만열, 최현만) ▲신한투자증권(이영창) ▲키움증권(황현순) ▲하나증권(이은형) ▲한국투자증권(정일문) ▲한화투자증권(권희백) ▲현대차증권(최병철) ▲BNK투자증권(김병영) ▲DB금융투자(고원종) ▲IBK투자증권(서병기) ▲KB증권(김성현, 박정림) ▲SK증권(김신) 등이다.

이중 라임 판매사인 신한투자증권과 KB증권은 올해 말 대표이사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제재가 결정 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특히 신한투자증권의 경우 모회사인 신한금융지주의 조용병 회장도 내년 초 연임 여부를 앞둔 만큼, 우리금융 손 회장에게만 중징계가 먼저 내려진 상황이 주목됐다.

일각에서는 그래도 손 회장에 대한 중징계로 인해 라임 사태 관련 CEO 중징계에 속도가 붙을 거란 시각이다. 금감원이 손 회장에 대해 중징계를 확정하고 금융위로 넘긴지 1년 8개월 만에 결과가 나와서다.

다만 본지 취재 결과 손 회장은 정말 먼저 매를 맞은 것일 뿐, 라임 관련 증권사 CEO들이 당장 중징계를 받게 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손 회장이 금번 중징계 처분을 받은 죄목은 자본시장법에 따른 판단인 반면 증권사 CEO들은 지배구조법상 제재로 중징계 처리 안건이 올라간 것이기 때문이다.


지배구조법상 중징계 판단, 여전히 ‘정체’


결국 증권사 CEO들은 지배구조법상 중징계 처분이 타당한 지 법리적 판단이 먼저 나올 때까지 제재 결정을 보류 받는 셈이 된다. 얼마든지 이 상황을 CEO 연임에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앞서 금감원이 지배구조법상 문제를 들어 DLF펀드 판매책임을 묻고자 내린 중징계 처분에 손 회장이 반기를 들고 제기한 징계 취소 소송은 결국 지배구조법상 중징계 제재를 받은 다른 금융사들의 방패막이 됐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더리브스와 통화에서 “금융사 CEO에 대한 제재 근거는 펀드 판매에 대한 내부통제 부실을 문제 삼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과 불완전판매 또는 부당권유로 제재하는 자본시장법에 따른 것으로 크게 2가지”라며 “금융사 지배구조법 제재 관련은 우리은행과 하나금융 관련 (징계 취소) 소송으로 인해 일단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려야 되는 상황이라 전체적으로 다 ‘홀드(중지)’돼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자본시장법 제재로 가는 부분은 대법원 판단과 별개 이슈”라며 “이 부분은 순차적으로 계속 처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 증권사 CEO들에 대한 제재는 모두 지배구조법 관련으로 안건이 올랐기에 여전히 금융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이다.

이 관계자는 “손 회장 관련 DLF 제재 취소 소송은 지배구조법 제재 관련으로 금융위에서 계류 중인 것이고 자본시장법 제재는 하나의 행위에 대해서도 사기죄나 횡령죄, 배임죄로 걸 수도 있는 건데, 현재 라임 관련 신한투자증권·대신증권·KB증권 관련 제재는 DLF 건과 모두 세트로 묶여 있는 지배구조법 관련”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재판을 핑계로 중징계 확정을 미루고 있는 금융당국에 대해 라임 피해자들은 씁쓸한 반응이다. A씨는 “금감원의 태도가 답답했던 지난 정권보다 더 후퇴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은지 기자 leaves@tleav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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