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이 넘쳐나는 시대.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 우리는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라는 얘기를 사실인 줄 믿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인터넷이 보급된 후 우리는 정보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거짓은 진실 속에 숨어 사실인 것 마냥 우리의 삶에 뿌리박혀 있죠.

하지만 ‘선풍기 괴담’처럼 거짓은 진실을 영원히 이길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유통되는 거짓을 뿌리 뽑는 날까지, 더리브스 ‘팩트체크’는 진실을 위해 앞장서겠습니다.

[사진=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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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지인·친구와 할로윈 데이를 즐기려 몰려든 인파에 지난달 29일 이태원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시민들의 도움으로 심폐소생술(CPR)을 받은 부상자들이 다음날 새벽까지 대거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자 156명을 포함한 전체 사상자는 300명을 넘겼다.

대규모 인명피해가 벌어진 구간은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뒷골목으로 해밀톤 호텔과 맞닿은 영역이다. 이번 참사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고자 ‘공중이용시설’ 여부를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본지는 해밀톤 호텔의 불법 증축으로 인해 중대법이 적용될 수 있을지 확인해봤다.


중대법 공중이용시설 여부 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해당 법은 사업 또는 사업장,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을 운영하거나 인체에 해로운 원료나 제조물을 취급하면서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 등을 규정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중대재해는 크게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뉘는데, 이번 참사의 경우 중대시민재해 쪽에 가깝다.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해 발생한 재해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고 동일한 사고로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발생할 때 적용된다.

이번 참사는 인근의 해밀톤 호텔 이용객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대규모 인원이 압사한 사고이기에 특히 ‘공중이용시설’에서의 결함으로 발생한 재해에 해당되는 것으로 비쳐진다. 아직 해당 구간을 현행 중대법이 정의하는 공중이용시설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법리적 판단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가 중대법 제2조 4항 라목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봤다.


중대법 제2조 4항 라목


중대법 제2조 4항 가~다목에 따르면 공중이용시설은 ▲실내공기질 관리법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영업장 중 해당 영업에 사용하는 바닥면접의 한계가 1000제곱미터 이상인 장소를 말한다. 이외 라목은 가목부터 다목까지에 준하는 시설로서 재해 발생 시 생명·신체상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장소가 해당된다.

백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뉴스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현행법 제2조 제4호에 규정된 공중이용시설에는 모든 지하철 역사가 포함되고 그 밖에 재해 발생 시 생명·신체상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장소가 포함되는 점을 비춰볼 때 사고가 난 골목길뿐 아니라 이태원역 1번 출구의 출입통로 등의 시설까지 ‘공중이용시설’로 볼 수 있어 참사 장소가 제2조 제4호 라목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백 변호사는 골목길이나 지하철 역사가 ‘공중이용시설’에 해당된다고 봐도 설치와 관리상의 결함이 있었는지에 대한 사실관계에 따라 중대법 적용 여부가 결정된다고 봤다. 그리고 이를 적용하더라도 관할 지방자치단체 등이 사고 이전에도 참사 장소를 관리하는데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해밀톤 호텔 불법 건축으로 좁아진 골목


이채원 참사가 일어난 골목. [사진=네이버지도 캡처]
이채원 참사가 일어난 골목. [사진=네이버지도 캡처]

백 변호사의 설명대로 해당 사고 구간에 대한 설치 및 관리상의 문제를 살펴보면 결함이 아예 없다고 보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골목길의 폭은 3.2미터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골목 위쪽은 폭이 5미터인데 아래로 내려오는 구간에서는 3.2미터로 건축법상의 기준보다 좁았다. 건축법에 따르면 도로는 보행자의 안전을 고려해 폭이 4미터 이상이어야 한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해당 구간이 보다 비좁아진 이유는 해밀톤 호텔의 불법건축물 때문이었다. 현행 법률 및 조례상 해밀톤 호텔과 같은 대형 건축물은 인접한 도로의 가장자리선(경계선)으로부터 3미터의 거리를 두고 지어야 하는데, 해밀톤 호텔은 이 도로 경계선에까지 철제 가벽을 설치한 결과 병목 현상을 심화시킨 구조다.

이와 관련 해밀톤 호텔 측은 10여년 전부터 가벽을 설치했으나 용산구청으로부터 단속을 받은 적이 없었다는 입장이었으며 용산구청 역시 가벽에 지붕이 없는 형태여서 건축물로 보기는 어렵기에 불법증축물 단속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해밀톤 호텔은 1970년대에 준공된 만큼 변경된 도시계획이 반영되지 않아 건축선을 초과한 상태로 유지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용산구청 측의 답변이다.

그러나 해밀톤 호텔과 유사하게 도로 일부를 불법 점유하는 등 현 건축법규를 위반한 반대편 상가에 ‘위반건축물’ 딱지가 붙어있다는 점, 해밀톤 호텔 자체가 현재 위반건축물로 등록돼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관할구청인 용산구청이 제대로 문제없이 관리를 한 게 맞는지 추가적인 검증이 요구될 수 있는 부분이다.

건국대 건축학과 안형준 전 교수는 이와 관련해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법으로 규정된 4미터 도로 폭이 확보되지 않았다면 지자체에서 ‘사람이 몰리면 위험할 수 있다’는 식의 경고 문구라도 가벽에 표시했어야 했으며 사고가 일어난 골목길 반대편 상가도 도로 폭이 확보되지 않았다면 인허가를 내주지 말아야 했다고 언급했다.


“중대법 적용여부 검토할 만”


중대법은 이번 사고 이전부터도 적용 대상을 확대해서 적용해야 한다는 개정 움직임이 있어왔다. 중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재해 등이 지속돼왔기 때문이다.

특히 2014년 판교 공연장에서 환풍기가 떨어져 사상자가 발생한 참사와 같이 옥외에서 진행되는 시민 참사가 반복돼온 만큼 재발 방지를 위해 공중이용시설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요구돼왔다.

이에 기존에 중대법 개정을 요구해온 시민사회 영역에서도 이번 이태원 참사가 해밀톤 호텔과 같은 불법 건축물로 인해 공간 밀집도가 높아진 영향이 있는 만큼 검토될 만한 사안이라는 의견이다.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운동본부 최명선 상황실장은 더리브스와 통화에서 “판교에서 환풍기 추락 사고가 났을 때도 실외공연이었는데 현재의 중대법은 약간 실내 중심으로 돼있다”며 “이와 관련 공중이용시설의 적용대상을 포괄적으로 적용하도록 주장했는데 수용이 안 됐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태원 참사도 실외공간인 골목에서 발생한 것인데 불법건축물까지 같이 고려해 검토할 만한 부분인 것 같다”며 “법리적 판단이 이뤄져야겠지만 적용 대상인지 여부는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고 케이스가 생기면 적용 범위는 넓혀봐야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혁연대 민생행동 송운학 상임대표는 더리브스와 통화에서 “서울시나 용산구청에서 도로교통법이나 여러 가지 법규를 적용해 불법건축물에 대해 규제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며 “해밀톤 호텔 근처에 다른 건물들은 그나마 불법건축물이니만큼 철거 안내문이나 경고문을 붙였는데 사고 건물의 경우 그런 안내도 없었던 만큼 문제가 있어보인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해밀톤 호텔의 ‘불법 증축’이 이태원 참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인정돼 중대법이 적용될지에 대한 법리적 판단은 추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다만 기존에도 중대법에서 정의해온 공중이용시설과 관련해 적용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돼온 만큼 이번 참사를 통해 밝혀진 법의 사각지대를 보완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

김은지 기자 leaves@tleav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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