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등 반전에 공매도 외국인 파산 시 증권사 수천억 손실
- 증권사 캐시카우 TRS·CFD에 손실 ‘부메랑’ 우려 더 커
- 공매도 손실 ‘개미 책임’ 넘겨온 증권사들 ‘역지사지’ 하게 돼
- 한국판 ‘게임스탑’될 수도…“이참에 불공정 시장 고쳐야”
OQP 주식에 대한 외국인 공매도에 힘을 실어준 증권사들이 위기 앞에 놓이게 됐다. 해당 주식의 향방이 예상과 정반대로 흘러간 결과 공매도 투자자들이 파산을 선언할 경우 이들이 대규모 손실을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개인 투자자(개미)들의 시선은 다소 싸늘해 보인다. 외국인 공매도와 관련한 여러 피해를 호소해왔지만 그간 투자자 책임만 지적받아왔는데, 이번엔 증권사들이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양상이 됐기 때문이다.
OQP, 예상치 못한 폭등에 공매도 세력 위기
18일 업계에 따르면, 코스닥기업 온코퀘스트파마슈티컬(OQP)에 공매도를 건 투자자들이 예상치 않은 주가 향방으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OQP가 지난해 3월 거래정지 중인 상태에서 추진한 인적분할이 발단이다.
인적분할은 기존 (분할) 회사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신설 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방식이다. 이 인적분할시 주주들은 신규 회사의 주식을 공짜로 얻게 된 격이 되니, 주주 가치가 제고되면서 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친다.
모회사 OQP에서 OQP바이오와 두올물산홀딩스가 인적분할 되자 주주들은 웃게 됐지만 공매도 투자자들은 울게 됐다. 인적분할 전 OQP에 공매도를 걸었던 투자자는 모회사와 지분 관계가 연결된 이 관계사들의 주식까지 모두 사서 갚아야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OQP에서 인적분할된 두올물산홀딩스가 자회사 두올물산과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위기감이 더해지고 있다.
두올물산은 장외주식시장인 K-OTC에 지난해 9월 13일 상장 이후 535원이었다가 급격한 상승세를 거듭하며 10만원대를 유지 중이다. 상승률은 2만%에 달해 투자자들에게는 기쁨이 됐지만, 이같이 부풀어 오른 주가는 OQP 공매도 투자자들이 갚아야 할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폭등에 못 이겨 공매도 투자자들이 파산을 선언하면 손실은 고스란히 관련 증권사들의 몫이 된다. 관련 증권사들이 위기감을 느끼는 이유다.
증권사 수익 통로 TRS·CFD, 후폭풍 예상
OQP에 가장 공매도를 많이 건 곳은 외국계 증권사인 모건스탠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모건스탠리가 직접 공매도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로 국내 증권사들이 총수익스와프(TRS)나 차액결제거래(CFD) 계약을 통해 주식을 대여해 주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 증권사들에게 후폭풍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OQP 거래에는 키움증권·미래에셋증권·삼성증권·신한금융투자·하나금융투자·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KB증권 등 국내 대형 증권사들이 상당수 엮여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TRS는 총수익 매도자인 증권사가 총수익 매수자인 투자자 대신 주식을 매입하는 계약이다. 자산 가격이 변동하면서 발생하는 이익과 손실은 투자자에게 귀속되는 대신 투자자는 증권사에 수수료를 지급하게 된다. CFD는 실제 주식 등을 보유하지 않고 진입가격과 청산가격 차액을 현금으로 결제하는 장외파생상품으로, 최소 증거금으로 매수·매도 주문을 낼 수 있어 10배까지 레버리지가 가능하다.
이 TRS와 CFD는 그동안 세금 무풍지대였던 방식이었다. 그런 만큼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시장에서 공매도를 사용할 때 단골로 활용돼왔다. 이와 동시에 그간 국내 대형 증권사들이 수수료 등의 짭짤한 수익을 누릴 수 있는 거래 방식이었다.
일반적으로 정보력이 앞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 공매도 기법들로 손실을 겪을 일이 많지 않았다. 이에 증권사 역시 덩달아 수익을 누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매도 투자 측이 걸어놓은 레버리지가 부메랑이 되돌아올 전망이다. 투자자가 갚을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기업 주가가 폭등하는 만큼 증권사들은 대신 손실을 짊어지게 돼서다. 그 손실액은 최대 수천억원대로 예상된다.
개미들 울렸던 공매도, 부메랑으로…“국내 시장 개선돼야”
관련 증권사들은 현재 예민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QQP와 관계사 합병 과정에 불공정거래 요소가 많다며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하는 한편, 소송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개미들에게 OQP는 조용한 성지가 되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의 원흉으로 여겨진 공매도 세력을 파산시키게 됐다는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에서다.
지난해 초 폭등한 게임스탑(GME) 사태도 연상된다. 이는 미국에서 공매도에 반발하는 개인들이 집중 매수를 이어가면서 빚어진 일이었다. 투자자들은 “거래정지가 풀리면 풀매수하겠다”, “한국판 게임스탑” 등의 반응을 나타냈다.
이같이 개미들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 데는 그간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불만이 반영돼있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정의정 대표는 더리브스와의 통화에서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별명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고 다른 하나는 ‘외국인 전자동 현금인출기’”라며 “외국인들이 공매도를 통해 개인 투자자들의 지갑을 털기가 너무 쉽기에 즐겨서 애용하던 곳이 우리나라 주식 시장이었고 이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IMF 때 우리나라가 굴욕적으로 자본시장이 무너져서 외국인들이 돈을 벌기 쉽게끔 자본시장법에 독소 조항이 아직 많고, 이를 이용해 외국인들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가 재수 없게 걸린 격”이라며 “문제는 증권사들이 외국인들한테 TRS 등으로 수수료를 받는데, 과장하자면 증권사들이 수수료 수입에 눈이 멀어 외국인은 돈 벌게 해주고 일반 개인 투자자들은 돈 잃게 하는 대리인 역할을 그동안 많이 하다가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투연은 앞서 TRS 탈세 혐의로 7개 증권사를 고발 조치한 바 있다. 정 대표는 이번 기회로 세금 등의 불공정한 부분이 해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소위 ‘먹튀’를 하면 끝이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외국인 투자 중 조세회피처를 통한 자금이 상당할 텐데, 국세청 입장에서는 세금을 받으려 하면 결국 원천징수를 하지 않은 증권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국세청 말대로라면 증권사가 수천억원 크게는 몇 조원 세금을 대신 납부한 다음 외국인들을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해야 하는데 회수 확률은 거의 10% 미만이다. 우리나라 증권사들이 거액의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이번 사태가 그간 잘못된 시장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로도 비쳐진다. 정 대표는 “그간 외국인들만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은 방치해두고 개인 투자자들이 재산 손실을 보는 경우 개인들 책임으로만 치부하거나 실력이 없다고 넘겨버리는 게 잘못된 관행”이라며 “지금부터라도 금융당국과 거래소, 증권사, 정치인 등이 머리를 맞대 자본시장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은지 기자 leaves@tleav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