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이 넘쳐나는 시대.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 우리는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라는 얘기를 사실인 줄 믿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인터넷이 보급된 후 우리는 정보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거짓은 진실 속에 숨어 사실인 것 마냥 우리의 삶에 뿌리박혀 있죠.

하지만 ‘선풍기 괴담’처럼 거짓은 진실을 영원히 이길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유통되는 거짓을 뿌리 뽑는 날까지, 더리브스 ‘팩트체크’는 진실을 위해 앞장서겠습니다.

[사진=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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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창업자에게 보유 지분보다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복수의결권이 실익보다 위험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난 24일 1주당 10개 이하의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는 벤처기업법 개정안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의결로 통과됐지만, 경제개혁연대는 복수의결권이 벤처에 실익이 없고 재벌에 악용될 수 있는 제도라며 여전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면 복수의결권주식제도에 대한 조속한 입법 추진을 촉구해온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발생하지 않은 미래 대기업 악용 우려로 벤처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그렇다면 복수의결권이 정말 실익보다 위험이 더 큰 제도일까. 복수의결권이 벤처기업들의 성장에 과연 꼭 필요한 제도인지 알아봤다.

정부 제출 벤처기업법 주요내용 요약표. [사진=참여연대 제공]
정부 제출 벤처기업법 주요내용 요약표. [사진=참여연대 제공]

복수의결권, 경영진 ‘독재’ 우려 나올 수 있어


복수의결권은 대주주가 보유한 지분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경영에 필요한 자본이 부족한 초기 단계 벤처기업에 투자금액이 과도하게 몰리며 창업주가 경영권을 잃고 외부자본에 휘둘리는 것을 막는 게 목적이다.

현행 상법 제369조에 따르면, 회사와 주주의 법률관계에 있어서 모든 주식은 ‘주식 수에 비례해 평등하게 취급돼야 한다’는 ‘주주평등의 원칙’ 하에 주식 1주당 의결권은 1개로 정하고 있다.

이에 비춰보면 주당 의결권의 수가 복수로 부여되는 복수(차등)의결권 주식은 주주평등의 원칙에는 위배되는 셈이 되는데, 그렇게 되면 복수의결권주식의 발행은 현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권한 집중을 발생시킨다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가 발표한 ‘복수의결권 관련 벤처기업법 개정안의 문제점 Q&A’ 자료에 따르면, 복수의결권 주식은 경영권의 이동을 어렵게 해 경영진이 무능력할 시 해당 경영진을 과도하게 보호할 가능성이 있다.

참여연대는 “벤처생태계의 선순환구조(창업->성장->회수) 측면에서, 무능력한 경영진까지 과도하게 보호해 경영권의 이동을 어렵게 함으로써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이 경우 창업가의 성공적인 회수를 통한 재도전과 벤처캐피탈의 원활한 투자금 회수 등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미 상법에서 종류 주식을 통해 무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어 복수의결권 도입 없이도 의결권 방어가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여연대는 “벤처기업들이 벤처투자자들로부터 경영권을 지키고자 한다면 무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다”며 “창업주가 복수의결권 주식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도 벤처투자자들은 투자계약을 통해 일정한 경영참여를 보장받게 되므로 벤처기업들이 주장하는 경영권 위협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된다”고 말했다. 복수의결권 주식이 가질 수 있는 경영권 보호 효과가 약하다는 얘기다.


“벤처기업 중 IPO 추진 기업 0.2% 불과”


복수의결권이 실익이 없다는 주장 중에는 벤처기업들 중에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기업이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 나온 내용도 있다.

지난해 12월 중소벤처기업부와 벤처기업협회가 실시한 ‘2020년 벤처기업정밀실태조사’에 따르면, 벤처기업의 신규자금 조달방법은 ‘정부 정책지원금’이 54.9%로 높게 나타났으며 ‘기타’는 22.7%, ‘은행 등 일반금융’은 20.9%로 이후에는 ‘캐피털 및 엔젤투자’, ‘회사채발행’, ‘IPO’ 순으로 나타났다. IPO로 자금을 조달한다고 답한 벤처기업은 불과 0.1%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벤처기업들은 정부 정책지원금으로 추가자금을 조달해왔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의 창업 시 장애요인은 ‘창업자금 확보에 대해 예상되는 어려움’이 가장 높은 71.9%로 나타났고, 다음으로 ‘창업실패 및 재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44.1%로 두 번째를 차지했다.

특히 IPO의 경우, 현재 상장된 벤처기업은 전체 기업 중 2.2% 뿐이며 비상장기업의 상장 계획 조사 결과에서 ‘추진 계획이 없다’고 답한 기업이 96.0%로 가장 높았다. 이어 1.7%의 기업들이 ‘추진 계획이 있다’고 답했고, 현재 상장을 추진 중인 기업은 0.2%에 불과했다.


복수의결권 도입으로 가치하락의 길 걸은 기업도


복수의결권 도입으로 가치하락의 길을 걸은 기업들도 있다. 복수의결권이 전통적으로 ‘세습의결권’으로 차용된 사례들에서다. 이는 주로 상호 호혜성, 합리성, 차등성, 자율성 등의 시장원리에 기초하지 않았던 군부정권과 국영기업, 그리고 재벌들에 의해서 나타났다.

재벌개혁운동본부 정호철 간사가 인용한 Anderson, Ottolenghi 그리고 Reeb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1934년 복수의결권을 도입했던 멕시코는 카르데나스 군부정권 시절 재벌경제체제하 1960년 1인당 GDP는 한국의 3배였지만, 50년이 지난 2010년에는 한국의 1/3수준으로 추락했다.

또한 1900년대 초에 복수의결권을 도입했던 미국에서 2001-2015년 사이 복수의결권을 갖고 있었던 전체 2만4724개의 주식회사들 중 7% 만이 비가족기업이고, 나머지 93%는 가족집단 지배기업들이 차지했다. 그 중 4%를 제외한 89% 대부분이 가업 상속 목적으로 복수의결권을 세습의결권으로 전용한 결과, 예외 없이 기업들의 가치가 하락한 선례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계 기관투자자인 S&P 다우존스와 영국계 기관투자자인 FTSE는 복수의결권 기업들을 자사의 지수평가 대상에서 일괄적으로 제외시켰다는 게 정 간사의 설명이다.

한편, 복수의결권을 가졌지만 기업 가치를 위해 창업주가 해당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사례도 있다. 구글은 2019년 전문 경영인 체제로 회귀하면서 복수의결권을 갖고 있는 공동창업주들이 경영 일선에서 스스로 물러난 바 있다.

임서우 기자 dlatjdn@tleav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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