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탄소중립법 본회의 통과…세계 14번째 탄소중립 법제화돼
산·관·학 협력 국제 기후리스크 관리모형 개발…“민간 활용 기대”
기후변화 대응, 자발적인 민간 참여 움직임도…RE100 캠페인 동참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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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2050년 탄소중립 목표가 법제화되면서 기후변화 위기대응에 한층 고무적인 바람이 불고 있다.

과거 정부에서도 녹색성장, 녹색금융 등을 외치는 목소리들은 이어져왔지만 기후변화가 법제화되지는 않은 상황에서 실효성 있는 해결방안은 나오기 어려웠다. 기후변화가 국가나 기업,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체감되는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점차 다양한 형태로 입증되면서, 금융당국과 기업, 학계 등은 한데 모여 기후 리스크를 관리하는 모형 개발에 착수한 상태다. 아울러 민간 차원에서도 기업들이 실질적인 재생에너지 캠페인에 동참하는 등 앞으로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세계 14번째 탄소중립 법제화 국가 오른 한국


지난달 말 2050년 탄소중립 목표가 담긴 탄소중립·녹생성장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167명의 의원 중 찬성 109표, 반대 42표, 기권 16표로 이뤄진 결과다.

이로써 한국은 유럽연합, 스웨덴, 영국, 프랑스, 독일, 덴마크, 스페인,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등에 이어 세계에서 14번째로 탄소중립을 법제화한 국가로 떠올랐다.

이번에 통과된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라 정부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2018년 배출량 대비 최소 35% 수준으로 잠정 결정했다. 산업계에서는 감축량이 과도하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다른 국가들의 감축 목표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라는 비판도 있다.

현재 법 통과 이전 만들어진 2030년 배출량 목표(2017년 대비 24.4% 감축)는 5억3600만톤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롭게 세워진 목표를 기준으로는 여기서 6310만톤을 더 줄여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계에는 부담이 될 수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함께 석탄발전을 줄이고자 노력한다면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2030년 석탄발전 비중 29.9%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면 4260만~7260만톤은 추가로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관리 필수된 기후변화…산·관·학 협력 국제 기후리스크 관리모형 개발 ‘첫발’


[사진=금융감독원 제공] 
[사진=금융감독원 제공] 

이같은 탄소중립법을 배경으로 산·관·학이 협력한 기후 리스크 관리모형이 개발될 계획이다.

14일 금융감독원은 외국당국과 주요 기업, 학계와 산·관·학 협력으로 지구 온난화를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국제적 합의 성취를 선도한다는 의미를 담은 ‘국제 기후리스크 관리모형’ 개발(프론티어-1.5D)을 추진 중이며 이를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기후리스크는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한 실물부문 물적 피해가 보험이나 대출 등 거래관계를 통해 금융부문으로 파급되는 ‘물리적 리스크’와 국가경제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저탄소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융손실을 의미하는 ‘이행 리스크’로 구분된다.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금융리스크는 신용리스크, 시장리스크, 운영리스크, 보험리스크로 크게 4가지인데, 해당 리스크가 더 증가할 경우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악화되고 금융시장이 불확실성이 증대돼 금융시스템 전반의 리스크로 전이가 가능하다.

국제결제은행(BIS)가 기존의 예측 불가능한 금융위기를 표현한 ‘블랙스완(Black Swan)’과 대비해 기후변화가 가져올 금융시스템 위기를 ‘그린스완(Green Swan)’으로 지칭했듯, 기후변화는 관리가 필수적인 리스크임이 인정되고 있다.

이에 동 협약에는 금융감독원, 영국(대사관), 이화여대, SK이노베이션, CJ제일제당, 삼성바이오로직스,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가 참여하며, 각자의 역할이 주어지게 됐다. 금융당국은 BIS가 제시한 금융당국의 역할에 기반해 코디네이터 역할을 수행하게 되며, 기업은 해당 업종별 기후리스크 관련 데이터 분석 및 연구 협력을, 이화여대는 연구방법론 및 모형개발, 영국대사관은 관련 자문 제공 역할을 맡게 된다.

협약 참여기관들은 공동으로 모형을 개발한 후 각자의 니즈에 맞게 변형해 활용할 예정이며, 동 프로젝트는 금융회사 및 기업이 기후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도록 ‘규제가 아닌 지원’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계획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기후리스크 대응을 위해 금융감독 당국과 기업·학계·외국당국이 협력하는 국제적으로 처음 시도되는 방식이라는 데서 의미가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더리브스와의 통화에서 “이화여대 연구진에서 주로 작업을 하다가 영국 대사관에서 필요한 연구기관을 연결해 자문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라며 “아직은 업무협약 단계이지만 연구진과 기업 실무진들이 앞으로 긴밀하게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탄소 줄이기 나선 금융사들…글로벌 재생에너지 캠페인 동참


금융당국이 주도하는 기후변화 흐름과 별개로 민간 차원에서도 탄소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움직임이 활발한 상황이다.

최근 금융기관들은 2050년까지 사용전력의 100%를 풍력이나 태양광 등의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세계적인 캠페인 ‘RE100’에 적극 가입 중이다. RE100은 2014년 영국 런던의 다국적 비영리기구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이 ‘CDP(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 Carbon Disclosure Project)’와 협력해 시작됐으며, 현재 324개 글로벌 기업들(구글, 애플, 뱅크 오브 아메리카 등)이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는 SK하이닉스, SK텔레콤, LG에너지솔루션 등이 가입했다.

기후리스크 프로젝트에도 참여한 KB금융지주는 금융그룹 최초로 ‘RE100’에 가입해 2040년까지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14일 전했다.

이를 위해 KB금융은 그룹 사옥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재생에너지 전력 공급자로부터 전력을 구매하는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과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 등을 검토하고 재생에너지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KB금융지주 윤종규 회장은 "ESG 선도기업으로서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하고 저탄소 경제 전환에 기여할 수 있게 KB금융그룹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미래에셋증권도 ‘RE100’ 가입을 선언했다. 미래에셋증권 최현만 수석부회장은 “이번 RE100 가입을 통해 국내 재생에너지 시장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대한민국 기후변화 대응에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수 있게 됐다”며 “미래에셋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적극적인 온실가스 감축 이행과 더불어 금융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앞서 상반기 ESG위원회에서 결의한 ‘ESG정책 프레임워크’를 통해 ESG경영 3대 핵심영역으로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노력(Climate Engagement & Net-zero)’을 제시한 바 있다. 이번 RE100 가입을 통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보다 명확한 로드맵을 수립해 2022년까지 대외 공개할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정부에서 탄소중립정책을 발표하면서 여러 정책들이 도입되다보니 생각보다 현장에서 기후변화를 정말 다가온 위기로 인식하는 기업들이 많았다”며 “국내 기업들도 이제 글로벌화가 돼있어 수출규제 부담도 있다 보니 생각 이상으로 부담을 느끼고 있기에 민간 차원에서 오히려 더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은지 기자 leaves@tleav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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